2023년 05월호 Vol.13

[VOL.13]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이야기] 왜 페어웨이와 러프라고 말할까

엔터테인먼트 2023-05-31 13:15 김학수 편집국장
푸른 잔디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페어웨이. 사진은 일동레이크GC모습.
푸른 잔디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페어웨이. 사진은 일동레이크GC모습.
요즘 학생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배우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읽고 암송해야 했다. 세상의 모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없는 길. 프로스트는 삶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은 한 길만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선택적 의지를 시에서 말했다.

18홀의 골프장은 드넓고 평평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나뉜다. 페어웨이(Fairway와 러프(Rough)이다. 페어웨이는 말 그대로 올바른 길이다. 잔디를 갂아서 잘 정돈된 지역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면 페어웨이는 손질이 잘 된 모습으로 푸른 양단자를 깐 듯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골프장에서 그린과 함께 골프의 매력을 가장 높여주는 핵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골퍼들이 가고 싶어하는 ‘꽃길’이다.

이에반해 러프는 가기 싫어하는 ‘흙길’이다. 꽃길에 비해서 그만큼 순탄하고 순조로운 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흙으로 덮여있는 길이 아니다. 페어웨이 바깥의 두꺼운 풀이나 자연적으로 자란 식물이 다듬어지지 않은 특정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공이 러프에 빠지면 탈출하는데 애를 많이 먹는다. 그래서 골퍼들에게는 흙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페어웨이(fairway)'는 그린 이외에 잔디를 깎아서 정돈한 구역을 말한다. 티그라운드에서 보면 앞쪽과 좌우로 거친 잔디로 러프가 펼쳐져 있고, 한 가운데 잘 손질된 잔디로 덮인 페어웨이가 마치 푸른 양탄자를 깐듯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골프장에서는 그린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페어웨이의 원래 용어는 ‘페어 그린(fair green)'이었다.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 골프역사에 의하면 1744년 골프 규칙 제1조 4항에 이 말이 언급되었다. 페어웨이라는 단어는 1세기가 지나서야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잔디를 깎는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페어웨이라는 공간을 만들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페어웨이는 골프규칙에 규정된 용어도 아니었다.

페어웨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유럽의 특이한 비밀결사모임인 ‘프리메이슨’과 어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메이슨은 중세의 숙련 석공길드에서 시작돼 18세기초 영국에서 세계 시민주의적, 인도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조직돼 발전한 비밀결사 단체이다. 프리메이슨이라는 명칭은 원래 특별한 결이 없는 견고한 돌(free mason)을 세공하는 직업을 가진 자를 의미했다. 자신의 기술과 조직에 관한 몇 가지 비밀을 갖고 있는 프리메이슨은 이 비밀들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프리메이슨은 거의 처음부터 기존의 종교조직들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 비밀결사의 성격을 띠었다. 그리스도교 조직은 아니지만, 도덕성 · 박애 및 준법을 강조하는 종교적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프리메이슨들은 대부분 초기 골프클럽 설립에 크게 관여했다. 그들은 페어웨이라는 용어가 유래됐을지도 모르는 ‘페어 플레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만들었다. 이들은 규칙을 공정하게 잘 지키는 태도와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는 의미로 페어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스포츠맨십을 강조했다. 페어웨이, 즉 올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의미였다.

원래 페어웨이라는 말은 항해 할 수 있는 채널이나 관습적인 항로를 뜻하는 옛 항해용어이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초기 골프는 항구 옆 링크에서 대부분 시작되었다. 링크위에 그물망 등을 말리기 위해 놓기도 했는데 어부들은 이를 보고 페어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부에게 기원을 한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이것이 페어웨이라는 말의 실질적 어원으로는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리 볼을 멀리친다 해도, 올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교훈이 페어웨이의 역사적인 기원 속에 담겨져 있다. 페어플레이가 없는 스포츠를 생각할 수 없듯이 페어웨이 없는 골프장은 골프의 참 맛을 잃게 할 것이다.

러프 위에 골프볼이 올려져 있는 모습.
러프 위에 골프볼이 올려져 있는 모습.

러프는 어떻게 유래된 말일까

골프에서 러프가 만약 없었다면 재미는 훨씬 없었을 것이다. 꽃길만 걷는 인생이 없듯이 흙길만 계속되는 삶도 없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나쁜 일만 있을 수 없다. 어쩌면 불행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삶에서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러프는 골프에서 바로 그런 존재감이라고 할 수 있다.

‘러프’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다의어이다. 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형용사로 ‘고르지 않은, 거친’다는 의미이다. 대충하는 행동과 성격에 관련해 많이 쓰인다. 썩 좋은 의미는 아니다. 명사로는 골프장에서 풀이 길고 공을 치기가 힘든 지역을 말한다. 그림 회화에서 초고, 밑그림을 뜻하기도 한다. 러프의 어원은 고대 영어 'Ruh', 앵글로 노르만어 'Ruksa'의 영향을 받아 거칠다는 의미로 쓰였다.

골프에서 러프를 만든 것은 몇 가지 목적이 있다. 먼저 징벌적 성격이다. 페어웨이를 놓친 골퍼들에게 벌타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잔디가 높은 러프에 들어가면 공을 빼내기가 어렵다. 골프장마다 러프의 잔디 길이는 다르다. 페어웨이 바로 옆 러프는 깎기도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잔디는 무성한 숲으로 바뀐다. 고급 골프장들은 러프도 등급을 나눠 운영한다.

러프는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등장했다. 해안가 링크스에 있던 초창기 골프장들은 페어웨이가 없고 거친 자연상태로 된 지역에서 출발했다. 잔디 깎는 기계도 없던 시절이라 자연적인 방식으로 잔디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풀을 먹고 자라는 양 떼와 염소들에 의해 초원이 관리되면서 골프를 할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이외 지역은 자연 상태 그대로였다. 산업과 과학의 발달로 기계적인 벌채 방법이 가능해지면서 골프 코스는 페어웨이와 러프를 계획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러프가 징벌적 성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골프대회는 US오픈이다. 미국 골프대회의 내셔널대회이면서 4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US오픈은 대회가 열리는 코스에서 러프를 특별 관리한다. 페어웨이에서 몇 피트 떨어진 러프의 길이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골퍼들은 러프에 대한 속어로 거친 풀, 큰 풀, 시금치, 잡초, 양배추, 브로콜리, 정글 등 거칠고 다양한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러프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표의성이 뛰어난 한자어로 러프는 ‘심초구(深草區)’이다. 깊은 곳에 있는 풀이라는 말이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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