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호 Vol.13

[VOL.13] [박주현의 산행수필] 설악산.... 최후의 만찬

라이프스타일 2023-05-31 13:15 김학수 편집국장
설악산 공룡능선 앞에 선 필자.
설악산 공룡능선 앞에 선 필자.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은 가톨릭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마지막 날의 최후의 만찬의 정경을 그린 것이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진 이 만찬의 그림은 기묘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장면에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한복음 13장 21절)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표시하여 거기에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자고 있던 요한이, 레오나르도의 화면에서는 성급하게 그리스도에게 다그쳐 묻는 베드로 쪽으로 머리를 기울여 그것을 듣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는 유다는 앞으로 몸을 구부려, 머리는 다른 사도들보다 낮으며 그 표정도 어둡고 애매하다. 그리스도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도 않고 대오(大悟)한 사람처럼 평온하다. 열두 사람들의 제자들은 세 사람씩 네 패로 갈라져서 그의 몸짓과 동작에 의하여 서로 결합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에서 명작 <최후의 만찬> 해석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원래 명작의 해석은 분분하다. 보편적으로 설악산은 8기 및 8경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없고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산솜다리, 금강봄맞이꽃, 바람꽃, 연잎꿩의다리를 중점으로 설악의 경이로움을 대신하고자 한다. 원래 명산의 아름다운 관점은 다양하다.

[설악8기]

천후지동(天侯地動) - 하절기면 비가 많이 내려 뇌성이 일어나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하늘이 온통 찢어지듯 울부짖고 땅이 갈라지듯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의 신비와 울림의 기이로움.
거암동석(巨岩動石) - 흔들바위와 같은 거암괴석이 움직이는 신기로움.
백두구혈(百斗毆穴) - 북면 용대리 외가평에서 백담사로 가는 백담계곡에 하식작용에 의해 구혈을 형성하고 있어 학이 날아간 흔적이라 불리기도 하는 구혈의 기이함.
전석동혈(轉石洞穴) - 외설악의 계조암은 대표적인 전석동혈로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있어 하나의 자연 동굴을 이루고 있는 신비로움.
수직절리(垂稙節理) - 암질과 구조의 차이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이루어져 내설악의 12선녀탕, 하늘벽과 같이 험준한 지형과 외설악의 천불동계곡 등 모두 신비롭고 다양한 절리에 천태만상의 형상.
유다탕폭(有多湯瀑) - 12선녀탕과 같이 쏟아지는 물에 반석이 패여 큰 바위확이 된 탕의 기이함.
금강유혈(金剛有穴) - 비로봉의 금강굴과 큰 석산에 구멍이 생긴 기이함.
동계설경(冬季雪景) -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쌓이고 쌓여 11월부터 3월까지 백설이 만연하다.

설악산 공룡능선 비경.
설악산 공룡능선 비경.


[설악8경]

용비승천(龍飛昇天) -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며 최장인 대승폭포를 비롯하여 쌍폭, 소승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육담폭포, 오련폭포, 천당폭, 독주폭포 등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물줄기가 낙하하고 무지개가 발생하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이 황홀하며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승하는 듯한 선경이 장관이다.
설악무해(雪嶽霧海) - 하절기이면 산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안개에 쌓여 구름위에 솟아있는 대청봉의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며 또한 안개 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산봉우리에 앉으면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 해 그 조화는 8경중 제일이다.
칠색유홍(七色有紅) - 겨울철에 쉬지 않고 낙하하는 폭포수에 햇살이 반사되어 비수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발생하고 또한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홍해황엽(紅海黃葉) - 만산에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누런 잎에 쌓여 골짜기마다 금수강산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선경이다.
춘만척촉(春滿擲蜀) - 대청봉 남측에 발달한 진달래와 철쭉군락을 비롯하여 백화가 온 산을 덮어서 4월에서 7월이면 꽃들이 만발하여 가득하니 상상 할 수 없는 진경이며 비길 데 없는 풍경이고 행인의 눈을 어리게 한다.
월야선봉(月夜仙峰) - 가을 밤하늘이 밝을 때 둥근달이 중천에 뜨면 기암괴석의 모습이 난무하는 선녀같이 보이는 절경은 설악팔경에 빼놓을 수 없는 야경이다.
만산향훈(滿山香薰) - 춘삼월부터 산천초목이 소생하면 그윽한 향기가 산에 충만하며 바람이 불면 향긋한 냄새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데 특히 대청봉, 화채봉, 오색계곡에 발생하는 눈향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보는 풍경도 좋고 여흥을 돋우어 준다.
개화설경(開花雪景) - 겨울철이 오면 온 산이 흰색으로 물드는데 나무나 기암절벽에 눈이 쌓이면 온갖 형태의 눈꽃이 피어 절경을 이룬다.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운 것이 모두 산이다. 고니가 나는 듯하고 칼이 서 있는 듯하고 연꽃이 핀 듯한 것은 모두가 봉우리요….”

조선후기 문신 해좌 정범조(1723∼1801)가 ‘설악산 유람기’에서 설악산(1708m)을 묘사한 글이다. 그는 1782년(정조 2년) 가을 양양군수로 부임을 받아 길을 가다가 북쪽으로 보이는 우뚝 서 있는 장대한 설악산의 위용을 보고 이듬해 가까운 벗들과 6일간 설악산을 둘러본 뒤 기행문을 남겼다.

설악산 공룡능선에 야생화가 질펀히 피어있다.
설악산 공룡능선에 야생화가 질펀히 피어있다.


일찍이 선조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명산 중의 명산, 그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공룡능선을 오르기 위해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부터 서두른다. 설악동 소공원을 출발해 비선대를 거쳐 마등령에 올라 본격적으로 공룡능선을 넘은 뒤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계곡으로 방향을 잡아 소공원으로 되돌아오는 약 20㎞ 되는 만만찮은 코스로 13시간 산행한다.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대표적 능선으로 생긴 모습이 마치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엄하게 보인다 해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설악 중 진(眞)설악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무색할 정도로 암벽미가 뛰어나다.

새벽 3시 주차장엔 이미 30여 대의 차가 처박혀 있다. 나의 로시난테도 쉴 곳을 안내받는다. 비선대로 향하는 3㎞의 길은 산객의 헤드랜턴 빛으로 반짝인다. 이 구간은 산책로 수준의 평탄한 길로 40분이면 족하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은 3.5㎞로 초반부터 곧추서 있다. 처음 1.5㎞ 구간은 고도를 약 650m를 높여야 하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한 발 올릴 때마다 가파른 돌계단은 눈높이로 바짝 다가와 조금만 더 앞으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것 같다. 험준한 돌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 반짝이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헤드랜턴 불빛은 또 다른 풍경이다. 1시간 치고 오르자 유순한 길이 잠시 나타난다. 하지만 다시 오르막. 공룡은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세존봉을 지나자 여명이 밝아오면서 어둠 속에 침잠했던 설악산 능선들은 희미하게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린다. 짙은 구름이 드리우는 바람에 일출다운 일출과 암봉을 휘감은 운해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바위의 장쾌한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비선대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비선대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비선대를 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나자 설악산에서 보기 힘든 평평한 고원이 나타난다. 말 등 같다는 마등령 삼거리로 공룡능선 시작점이다. 멀리 공룡능선을 엿본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송곳니 같은 날카로운 암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룡능선 최고봉인 1275봉이다. 그 주변으로 험준한 봉우리들이 경쟁하듯 솟구쳐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공룡능선 산행은 이들 봉우리 사이를 걷는 것이다. 그 뒤로는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이어진 산등성이와 그 너머 푸른 속초 앞바다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아~연잎꿩의다리를 알현한다.

누구의 눈물이 저리 맑을까./
고일 수 없고 흐를 수도 없어 / 제 몸을 한 바퀴 돌리는 저 슬픔을/ 누가 멈출 수 있을까.
연잎도 그 눈물 어쩌지 못해/ 두 손에 받쳐 들고/ 머리에 이고 맴돌고 있네.
그렇게 서성이다 다리가 길어져/ 연잎꿩의다리가 된 것일까.
어느 때 가늘어진 다리가 끊어지면/ 그 꽃 한 마리 꿩이 되어/ 그대 옷고름에 매달려 있는/ 눈물 하나 물고/ 울지도 못하고 산을 너머 갈 거야.

설악산에 핀 야생화 모습.
설악산에 핀 야생화 모습.


연잎꿩의다리는 설악산과 금강산 높은 곳의 바위 지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길고 굵지만 덩이줄기가 발달하지는 않는다. 전체에 털이 없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10~60cm이다. 잎은 작은 잎 3장 또는 9장으로 이루어진 겹잎이다. 작은 잎은 지름 2-10cm로 둥글고, 잎자루가 방패처럼 붙으며, 뭉툭한 톱니가 있다. 잎 뒷면은 희다. 꽃은 6월에 피며, 줄기와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꽃자루는 가늘고 길다. 꽃받침은 4~5장으로 보라색을 띠지만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없다. 수술은 많으며, 암술은 3~5개이다. 열매는 방추형 수과로 겉에 골이 있고 끝이 둥글며, 열매 자루는 없는 듯이 보일 정도로 매우 짧다.

겉은 진하고 뒤는 흰빛이 도는 방패 모양의 작은 잎들로 이루어진 겹잎, 꽃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여러 개의 수술 등의 특징은 원예자원으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게 한다. 서양에서는 이미 유사종 꼭지연잎꿩의다리를 원종으로 하여 ‘이브닝 스타’, ‘퍼플 마블’ 등의 원예품종을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다. 연잎꿩의다리는 원종 자체가 원예적인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원예품종 개발에 필요한 유전자원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야생화가 설악산에 외롭게 꽃을 터뜨린 모습.
야생화가 설악산에 외롭게 꽃을 터뜨린 모습.


우리나라 보호종, 즉 지역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연잎꿩의다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기준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이다. 분포 면적이 협소하고, 개체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멸종되는 속도에 관계없이 세계 수준의 멸종위기종에 해당한다.

이제부터는 중간에 식수도 없고 탈출로도 없어 모든 것을 참고 약 5㎞ 거리를 가야 한다. 4시간 30분 동안 5개의 큰 봉우리를 지나야 한다. 등산로는 대부분 바위의 오른쪽으로 나 있다. 왼쪽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절벽이다. 하늘의 구름이 걷혀 햇볕이 쏟아지지만 바람은 태풍 못지않게 몰아쳐 몸이 날려갈 정도다. 땀으로 젖었던 몸이 이내 오한을 느낀다.

공룡능선의 여름 땡볕은 산객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전반적으로 녹음의 향연으로 공룡능선의 푸르름은 이미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아름다운 자태로 연신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황홀과 격동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녹음 속에서 마음은 이미 푸른 청춘이다.

아~ 금강봄맞이꽃을 알현한다.

은하수의 별들이 내려와 꽃이 되었다는 금강봄맞이꽃. 금강산과 설악산 주변에 산다는데 얽힌 전설 한가지 소개한다.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 길에 고향서 가져온 이 꽃을 설악에 심고, 꽃이 피면 경주로 돌아가 나라를 되살리겠다고 다짐했다는데. 초봄에 펴 봄을 알리는 전령이지만 설악에 와서는 6월에 피는 여름맞이꽃이 되었다.
마의태자를 기다리다 결국 봄이 다 가고 여름에 피게 된 것이다. 평지에서 3월에 피는 꽃이 1700고지 설악에만 모여 사니까 산꾼들이 만든 얘기일 듯하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된 옥황상제께서 금강봄맞이꽃을 밤이면 하늘로 데려가 별이 되게 하고 낮엔 공룡능선으로 내려와 쉬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기괴한 암봉들이 삐죽삐죽 치솟은 공룡능선을 걷는 길은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듯한 선경이다.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석림(石林)을 이룬 신비의 봉우리마다 서린 기운은 맑고 깨끗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화석처럼 굳어 설화를 꽃피울 날을 기다린다.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은 서책을 쌓아놓은 듯, 시루떡을 켜켜이 올려놓은 듯 만상의 형체를 보인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흰 조각상을 풀어놓은 듯 화려하다.

아~산솜다리(에델바이스)를 알현한다.
눈과 얼음에 싸인 스위스의 알프스 산 위에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에델바이스였고 얼음으로 된 집에서 혼자 살았다. 에델바이스는 원래 천사였는데 변덕스러운 신이 소녀로 만들어서 산꼭대기로 내려보낸 것이었다.
에델바이스는 혼자 있어도 지루한 것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얼음집 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한 손에 피켈을 쥔 남자였다.
"아니, 너 같은 여자아이가 어떻게 이런 산꼭대기까지 올라왔니?"
등산가는 얇은 옷 한 장에 맨발인 에델바이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에델바이스는 대답 대신 방긋 웃기만 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디서 왔니? 이름은?"
"에델바이스."
등산가는 하산 후 그가 겪은 꿈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고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에 사람들은 놀랐다. 수많은 남자가 얼음집과 소녀를 보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목숨을 건 등반에서 성공한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 에델바이스는 산에 올라온 남자들에게 미소를 보냈지만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제발 저를 멀리 데리고 가 주세요. 내가 없어지면 목숨을 걸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없어질 테니까요."
에델바이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그때야 비로소 변덕스러운 신은 한 천사를 소녀로 만든 것이 생각났다. 신은 한 줄기 빛을 보내 에델바이스에게 천사의 모습을 되찾아 주었다. 얼음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곳에는 새하얀 꽃이 피었다. 높고 험한 산을 오른 자만이 만날 수 있는 청아한 꽃을 사람들은 에델바이스라고 불렀다.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밧줄을 타고 쇠기둥과 철 계단을 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공룡 등뼈를 더듬는 듯 네발로 엉금엉금 바위틈을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아~바람꽃을 알현한다.

우리나라에는 바람꽃속(屬), 쉽게 말해 같은 집안의 비슷비슷한 종류가 여럿 있다. 얼레지와 현호색 등과 함께 봄 숲을 이루었던 꿩의바람꽃을 비롯해 꽃대가 하나씩 올라와 외로운 ‘홀아비바람꽃’, 똑같은 두 개의 꽃대가 올라오는 ‘쌍둥이바람꽃’, 백색의 화피가 없이 꽃만 나타나 수술의 빛깔 때문에 꽃이 노란 구슬처럼 보이는 고운 ‘회리바람꽃’ 등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 봄에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들이다. 그런데 앞에 수식어가 하나도 붙지 않은 오늘의 주인공인 그냥 ‘바람꽃’은 바로 한여름 가장 높은 산들의 가장 높은 산정에서 피어나는 대표적인 고산의 여름꽃이며 북방계 식물이다.

앞에 형용사가 붙지 않으니 이 바람꽃 집안의 대표식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바람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설악산 이북, DMZ 지역에서는 향로봉·건봉산 지역, 그중에서도 가장 높아서 바람으로 혹은 바위로 인해 큰 나무들은 잘 자랄 수 없어 초원 군락이 만들어지는 그런 곳에 분포하기 때문이다.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바람꽃은 다른 바람꽃 종류들과는 꽃이 피는 시기도, 자라는 장소도 다르지만 그 모습이나 꽃이 피는 특성도 조금은 다르다.
줄기 끝에 꽃대가 달리는데 길이가 일정해 마치 우산살이 퍼지듯 5~6개 정도 달리고 그 끝에 흰 꽃이 핀다. 어찌 보면 숲의 요정들이 탐낼 만한 작은 꽃다발처럼 보인다. 포기마다 달리는 꽃의 수는 많은데 홀아비바람꽃이나 꿩의바람꽃처럼 이어져 큰 무리를 만들며 분포하지 않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자라는 곳이 바위틈처럼 워낙 열악한 환경인 것도 한몫한 듯싶다.

그런데 이 바람꽃의 학명을 보면 아네모네 나르시시플로라(Anemone narcissiflora L.)다. 신화에 나오는 아네모네와 나르시스, 이렇게 두 이야기가 이름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은 참 이례적이다. 이 꽃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네모네에 얽힌 이야기.... 꽃의 여신 플로라의 시녀였던 아네모네가 플로라의 연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의 사랑을 받자 질투를 느낀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먼 산으로 쫓아 보냈고,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끝까지 찾아내 사랑을 나누자 더욱 화가 난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피로스는 아직도 아네모네를 잊지 못하고 바람이 되어 높은 산에서 피어나는 이 꽃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나르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에코라는 요정이 나르시스를 사랑하지만 나르시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에코는 수치심에 자살한다.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가 나르시스에게 연못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벌을 내리고, 그 후 나르시스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식음도 전폐하고 자기 모습만을 끊임없이 바라보다 죽게 되는 이야기다. 대단한 왕자병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도, 욕심이 과한 것도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바람과 구름만을 벗 삼아 고고하게 살아가는 바람꽃을 보면 서양의 전설이 주는 강렬한 느낌보다는 무엇보다도 인간 세상의 복잡함을 다 벗어버리고 고결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그런 꽃으로 느껴진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대에 올라서면 내설악·외설악의 장쾌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뒤돌아보니 공룡능선의 등줄기를 이루는 마등령, 나한봉, 1275봉은 물론 천화대의 범봉이 늘어서고 멀리 울산바위도 시선에 담긴다. 서북능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청, 중청, 소청 아래로 용아장성이 줄을 서고 귀때기청봉과 안산까지 장쾌한 설악의 고봉들이 늘어선다.

신선대를 지나면 공룡이 능선을 다 탔다며 산객을 등에서 내려준다. 무너미고개에서 왼쪽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도 녹음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설악산 폭포수는 동식물 생존을 가능케하는 생명수이다.
설악산 폭포수는 동식물 생존을 가능케하는 생명수이다.


비선대까지는 약 5㎞로 3시간가량 병풍처럼 솟은 기암괴석의 비호를 받으며 걸어간다. 이어 소공원까지 40여분. 13시간의 대장정을 끝내니 설악산의 절경이 머리에 박혀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주제의 모티브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최후의 만찬>이다.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예수의 에피소드는 예술가들에게 십자가 처형 다음으로 인기 있는 주제이다. <최후의 만찬>은 역동적인 구성과 완벽한 원근법 구사로 르네상스 회화의 결정판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 벽에 그려진 그림은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를 배신하는 자가 있다"라는 예수의 말에 제자들이 당황하여 허둥대는 장면이다.

명작은 원래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댄 브라운이 포착한 것은 영지주의(靈智主義) 복음서를 따르는 해석이다. 민중 신비주의로 통하는 영지주의는 3세기경 그리스 남부를 중심으로 퍼졌던 사상이다. 이에 따르면 막달레나는 예수의 아내이자 실질적인 후계자로, 제자 중 우두머리 격이었던 베드로의 시기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 사상의 본 갈래가 막달레나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레오나르도도 영지주의 사상의 신봉자였고, 그런 속내를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중앙에 예수가 있고, 그의 오른편에 정체가 예매해 보이는 인물이 보인다. 예수와 쌍을 이루듯 파란 옷에 붉은 망토를 걸쳤다. 이 인물은 미술사가들은 요한이라고 해석하지만, 영지주의 복음서를 따르는 학자들은 막달레나라고 말한다.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여자로 보기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는 험악한 얼굴을 한 노인이 보인다. 막달레나의 목을 치려는 듯 손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칼을 숨기고 있다. 그는 베드로다. 예수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두 사람 사이의 알력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 만찬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예수의 성혈을 상징한다는 포도주를 담는 잔이 보이지 않는다. 식탁 위에 성배가 없다는 말이다. 레오나르도는 예수의 성혈을 담은 그릇을 잔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그림 속에다 막달레나를 집어넣었고, 성배의 은유까지 심었다. 예수와 막달레나 사이에 보이는 'V'자 공간이 그것인데 그릇의 은유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와 막달레나를 연결하면 'M' 자의 구성이 보이는데, 이것은 막달레나의 이름 첫 알파벳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곧 막달레나를 지칭한다는 주장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2천여 년 전에 벌어진 일들의 정확한 진실을 밝혀낼 수는 없다. 대게 상대적으로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어 많은 사람의 동의하는 것이 정설로 인정된다. 이를 통해 접근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설득력를 갖기에 그렇게 믿을 뿐이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요정 산솜다리, 바람꽃, 연잎꿩의다리, 금강봄맞이꽃 중에서 두 분만 보면 대박인데, 4분 모두 알현하였다. 운 좋은 하루였다. 공룡의 아름다움은 대한민국 제1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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